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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마지막에 민폐녀만 살아남는 이유

Submitted by skagns on 2010. 2. 26. 06:15

추노에서 스토리 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만 같았던 조연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또 죽이나? 결국 다 죽는 것인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추노꾼 3인방으로 추노에서 많은 애착을 가졌던 캐릭터인 최장군과 왕손이가 죽은 것처럼 비추어질 때는, 그것이 원망으로 바뀌어 제작진과 작가의 문제점들을 꼬집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었죠.

저도 추노를 재밌게 보고 있으면서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줄줄이 죽어버리니까 솔직히 허무하기도 하더라구요. 예고에서 천지호마저 대길을 구하려다 죽어버리는 걸로 나오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천지호만은 끝까지 갔으면 했건만... 하지만 아쉽게도 추노는 그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주인공들이 꿈꾸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미 그들의 죽음이 모두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렇다면 아직도 죽을 사람들이 더 남아있다는 것인데요. 

결국 추노는 조연에 이어 주연들까지 모두 죽여버리며, 단순히 실패로 끝났던 그들의 안타까운 일대기를 보여주고 감성을 자극하는 새드무비와 같은 드라마 일까요?

저는 추노라는 드라마는 단순히 그런 한두명 주인공의 인생 스토리만을 그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을 짚어보기 위해서 각각의 캐릭터가 어떠한 구도 속에서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과연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게 될지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캐릭터 3-3 의 구도  

추노에서는 대길, 송태하, 업복이 이렇게 3명의 캐릭터가 3가지 꿈꾸는 세상과 3가지 러브라인으로 구도가 잡힌 채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길이 꿈꾸는 세상>

먼저 대길은 가문이 멸족하고 혼자 살아남은 양반인데요. 양반의 신분이지만 저자에서 살고, 추노꾼을 하며 상놈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또한 양반과 노비가 서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멸족 전에 여종 언년이를 사랑하며 신분에 격차를 두지 않았죠.

이런 대길이 꿈꾸는 세상은 양반, 상놈, 노비 할 것없이 모두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구분없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양반이지만 노비인 언년이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송태하나 업복이처럼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대적 관습이나 제도들을 무시하려합니다. 노비 언년이를 찾아서 사랑을 이루고, 상놈인 최장군, 왕손이와 함께 양반인 자신이 빼돌려서 모아 둔 돈으로 사둔 땅에서 가족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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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의 러브라인>

대길의 사랑은 처음에 언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년이 대길을 떠나 혜원이 되고 송태하와 혼인을 하는 순간 이미 그 둘의 사랑은 어긋나 버렸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결국 대길과의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사람은, 사당패에서 저자를 떠돌며 몸을 팔고 세상만사 눈치와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설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설화의 짝사랑일 뿐이고, 대길에게 설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언년이에 대한 사랑만이 가득할 뿐이지만 말이죠. 결국 이 둘의 러브라인 역시 서로 이루어질수는 없겠지만, 이미 언년이는 존재하지 않기에 대길의 옆에서 대길만을 바라보는 설화와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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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하가 꿈꾸는 세상>

먼저 송태하는 양반입니다. 권력 암투 속에서 노비로 떨어지지만 스스로 양반이라는 생각은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부하와 함께 혁명을 일으키려는 양반들 역시 송태하를 장군이라 칭하고 양반으로 대하고 있죠. 그는 충신으로써 철저히 양반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부국강병한 조선을 세우자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세상 내 주위 가족이 행복해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것은 양반으로서 또한 한 나라의 신하로서 올바른 왕을 세워서 잘 다스리는 것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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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하의 러브라인>

송태하의 러브라인은 혜원과 형성되고 있습니다. 소현세자의 원대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비로서 참고 지내다가 탈출하여 도망가던 중 만난 혜원과 동행하게 되면서 썸씽이 이루어지게 되죠. 처음에는 동행하게 된 혜원을 동행인으로써 지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제주도 여행(?) 이후 여자로 느끼게 되면서 서로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무사히 원손을 데리고 나오면서 혁명을 일으킬 양반과 세력들과 규합하는 가운데, 혼례를 치루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되죠. 하지만 이들의 러브라인 역시 순탄치만은 않은데요. 혜원이 고백하지 못한 노비였다는 과거를 과연 양반인 송태하가 알게되었는데 어떤 대처를 보여줄 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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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복이가 꿈꾸는 세상>

관동 포수로 호랑이 사냥을 다녔던 업복은 선대에 갚지 못한 빛 때문에 노비로 팔렸는데요. 머슴질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추노꾼인 대길에게 잡혀온 이력까지 있는 업복은 양반에 대한 한이 서린 캐릭터입니다. 또 다시 도망다니느니 노비들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양반들을 죽여 상놈의 세상을 만드는 노비당에 입당하여 양반들을 하나둘씩 죽여나가기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업복이 꿈꾸는 세상은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 받으며 죽으면 고깃값도 못하는 노비들이, 양반들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 대접 받으며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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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복이의 러브라인>

업복이과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은 초복이 입니다. 같은 도망노비라는 동질감에 서로 의지하며 마음을 나누고 이제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초복 역시 업복에게 마음이 있지만, 초복은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도망노비 문신 때문에 자신을 여자로 봐줄까 걱정하면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업복이 역시 초복이 업어달라는 말이 다리가 아파서 그런 줄로만 알 정도로 눈치가 없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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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자 자신의 신분과 환경에 따라 꿈꾸는 세상이 다른데요. 대길은 몰락한 양반으로써 신분제도를 무시한 채 상놈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송태하는 양반으로써 신분제도를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양반들이 만드는 좋은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또한 업복은 노비의 입장에서 양반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추노에서는 이 3명이 꿈꾸는 세상 모두 아직까지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요. 대길은 언년이를 잃고, 최장군과 왕손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꿈꾸던 꿈이 산산조각 나버렸고, 송태하는 같이 혁명을 일으키려는 양반들과의 대립으로 자신이 왕을 바꾸려하는 것인지 세상을 바꾸려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업복이 역시 그분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이 과연 양반과 노비가 서로 바뀐 세상인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죠.

이것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현재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는 남자들이 다 죽고 여자인 민폐녀들만 살아남을 듯 한데요. 그 이유는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추노가 단순히 추노꾼의 일대기를 그리는 새드무비 같은 드라마가 아닐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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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노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결국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원하는 세상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것은 꿈일 뿐이죠.

하지만 그것이 실패했다고 하나 그것이 의미없는 일은 아닙니다. 대길이 꿈꾸는 평등한 세상, 송태하가 꿈꾸는 부국강병의 세상, 업복이가 꿈꾸는 노비들도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 이 모두가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그렇게 실패하고 실패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의식의 개선 등이 과정으로 되어주어야 것이지요.

그런데 추노는 그것이 과정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후 그들이 꿈꾸왔던 세상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두게 될텐데요. 보통 영화이든 드라마이든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는 것은 어떤 여운을 남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추노에서 그 여운이라는 것은 각각의 남자 캐릭터가 꿈꾸던 세상을 러브라인을 구축하고 있던 여자들이 기억하고 살아남아서,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후대로 이어나가는 것이 될 듯 한데요. 저는 아마도 단순히 여자들만 살아남아 남자들의 삶과 꿈꾸던 세상을 기억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그녀들이 남자들의 아이를 배면서 보다 더 전진하는 메시지를 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아버지들이 꿈꾸었던 세상들을 아들이 이어받아 그들이 각자 꿈꾸던 '평등한 세상', '부국강병의 세상', '노비도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송태하와 혜원은 원손을 자신들의 아이처럼 키우기로 합의(?)를 봤지만, 대길과 설화는 대길이 술먹고 실수(?)하지 않는 이상 힘들 것 같기는 한데요. 업복이와 초복이 역시 좀더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기대하기 쉽지가 않구요. 결국 그러한 러브라인의 의미 역시 대길이 꿈꾸던 '평등한 세상'과 업복이 꿈꾸던 '노비도 사람대접 받는 세상'은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아직은 양반들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조금씩 발전을 해나가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혜원은 송태하와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대화를 많이 합니다. 그런 대화 속에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많이 읽을 수 있는데요. 이는 14회에서 송태하와 혜원의 대화 속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제가 살면서 들은 말중 가장 무서운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세상은 변하지 않으니 무엇도 할 생각마라.
무엇도 꿈꾸지 마라.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라.
그런 말 함부로 못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변한다. 그렇게 노비인 언년이에서 양반인 혜원의 삶을 살면서 단순히 작가가 강조한 외면적인 것들(신부화장) 뿐만 아니라, 혜원이 송태하와의 대화를 통해서 느끼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생기는 내면적인 변화들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이 변해가다보면 결국 그들이 꿈꾸던 세상이 오게 될테니깐요.

그렇게 추노는 민폐녀라고 욕먹던 그녀들이 살아남아서 그들이 꿈꾸던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노에서 계속적으로 혜원이 송태하를 기다리고, 설화가 대길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그리고 16회에서 결국 그녀들이 길을 찾아 나서는 것도, 그런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기다리는 가운데 그녀들이 강해지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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