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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하이킥이 전하는 메시지는?

Submitted by skagns on 2010. 3. 21. 14:16


그동안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면서 저는 간과했던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신세경과 신신애가 주인공이라는 점인데요. 다양하고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고, 에피소드 자체가 큰 줄기가 있는 가운데 그런 캐릭터들이 돌아가며 웃음과 재미를 가져다 보니, 한회 한회에 집착하게 되면 어느 새 그런 사실을 망각해버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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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인공은 신세경과 신신애라는 점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세경은 왜 지붕 뚫고 하이킥을 날리나?  

먼저 하이킥은 방영 전 이미 '서울로 갓 상경한 두 자매가 성북동 순재네 집 식모로 입주하게 되면서 이 집 식구들과 벌이는 유쾌한 코미디를 담은 시트콤이자, 동시에 사랑을 통해서 삶에 눈을 뜨는 두 자매의 성장드라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지붕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요.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이킥 역시 세경 자매가 사랑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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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에서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그리워 지붕 위를 뚫고 지나가는 새를 그린 그림을 보내자, 데미안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라고 답장을 보내게 되죠.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지붕은 세경 자매에게 비와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입니다. 세상과 바로 마주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지내는 것에도 크게 부족함은 없는 그러한 곳이죠. 하지만 그런 안전한 곳에서 세경 자매는 자꾸만 쪼그러들게 됩니다. 새가 알을 깨고 나가야 하듯이, 세경 자매 역시 스스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의 자아를 찾기 위해서 안전한 곳이었던 지붕을 뚫고 하이킥을 날리며 나와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안전한 세상을 깨는 공포를 견딘 후에야 비로서 성숙해지고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정해진 결말 속에서 그려진 스토리, 의도되지 않은 것은 없다  

어떠한 작가도 그것을 연출하는 PD도 가장 먼저 주인공을 만들고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려는 메시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게 뼈대를 그린 가운데 캐릭터들을 형성하고 결말에 대한 엔딩을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는 그러한 메시지와 엔딩에 맞추어 살들이 붙어 에피소드들을 그려나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말을 궁금해하자 아직은 정해진 결말은 없다며 철통 보안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사실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직접 대본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하이킥의 결말은 작가와 PD의 머리 속에서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말을 정하지 않고는 에피소드들 속에 담을 큰 줄기의 흐름을 놓쳐버리게 되거든요. 복선들도 미리 넣어두려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방영시기 역시 그렇습니다. 2009년 9월 7일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을 지나 2010년 3월 19일 봄에 끝나게 되지요. 외롭고 쓸쓸한 가을을 지나 춥고 움츠려드는 힘든 겨울을 보낸 뒤에 비로서 모든 것들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에서 끝난 것입니다. 움츠려들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세경에게 지훈이 선물한 빨간 목도리 역시 그런 방영시기에 맞는 절묘한 소재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하이킥을 통해 진행되는 사랑이야기 역시 모두 세경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결과를 염두하고 만들어진 스토리가 됩니다. 결국 지훈과 세경의 러브스토리를 큰 축으로 준혁과 정음은, 그 둘의 사랑에 있어 조연이었을 뿐이죠. 

예전에 작성한 리뷰인데 참고하시면 될거에요.


이미 하이킥의 결말은 첨부터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병욱 PD는 예전에 하이킥 결말에 대해서 온갖 추측과 루머가 한창일 때 인터뷰를 통해 "모두가 공감하는 결말을 만들 것이다."라고 밝혔었습니다. 사실 모두가 공감하는 결말이란 없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이 다른데 종착점이 같아질 수는 없죠. 그렇다고 김병욱 PD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듭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한 제작진은 결말에 대해서 묻는 인터뷰에서 “세경과 정음이 누구와 맺어지고 맺어지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진정으로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보여주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결말로 인해 지붕 뚫고 하이킥이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붕 뚫고 하이킥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지붕뚫고 하이킥은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은 하이킥 시리즈의 연속입니다. 물론 캐릭터나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이킥이라는 것이 담는 사회적 메시지의 연속이지요. 그러다 보니 단순히 웃기는데에만 주력하지 않고 진지함을 풀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김병욱 PD는 현실을 통한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면서 성숙해 가는 데에 있어 추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시간이 지나면 이 미칠 듯한 마음도 언젠간 가라앉겠죠. 아저씨 말처럼 언젠간 이 순간도 웃으며 떠올릴 추억이 될 거라 믿어요."

"추억이 사는 기쁨의 절반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도 추억이잖아."


"지금 당장 현실이 고되고 힘들어도 결국 지나고 나면 그것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다"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세상에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죠.

그렇다면 이제 결말을 얘기해볼까요? 세경이 이민을 결정하면서 세경은 드디어 지붕을 뚫고 하이킥을 날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의 고통을 극복하면서 새롭고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세경은 이민가기 싫었던 이유를 애기하는 독백에서 하이킥에서 말하고 싶었던 사랑을 통해 삶에 눈뜨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길게 방영된 것 중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한번에 쏟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검정고시 꼭 보고 싶어서요. 대학도 꼭 가구...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가는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이는.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두.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됬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구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 깨달았거든요.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는 좀 힘이 들긴 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에게 그동안 맘에 담아둔 말들 꼭 한번 맘껏 해보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와가나요?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세경의 독백을 보면 자신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의 현실을 밟고 올라서는 안타까운 사회와, 현실을 무시했을 때 결국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비참해지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살고 있고 결코 현실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빌려 우리가 살아가는데에 있어 신분, 계급에 의한 사다리를 올라가는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구요.
물론 그것이 "아저씨랑 헤어지면 보고 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힘들긴 했다"는 것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한가지를 더 이야기 하면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바로 행복이지요. 사람들은 좋은 곳에 취업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에 좌우되지 않는 것이죠. 가난에 찌들려 힘든 현실 속에서 살고 있더라도 자기 자신이 만족을 하게 되면 행복한 것이지요. 행복은 단순히 풍요로울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자신이 만족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지요. 물론 퐁요로울 때 사람은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풍요로울 때 만족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 풍요가 행복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요.

암튼 세경은 결말에서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지훈과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자신의 현실 속에서 힘든 것들이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속에 있던 모든 이야기를 지훈에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서 자신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고,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 행복함이 계속 이어졌으면 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이킥은 시간을 멈추어버립니다. 죽음을 암시하나 어느 곳에서도 죽었다고 확실히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3년 뒤 정음의 말을 빌려 일어난 모든 일들은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 그것이 지훈과 세경이 죽었다라고 확실히 이야기 하는 것은 또 아니죠. 죽었다고 생각되지만 죽은 것은 아닌 묘한 여운을 남기게 되지요. 이것은 물질적 신분적 사회 속에서 힘들어하는 현실을 극복하여 이상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공중으로 몸을 띄워 사라지면서 더이상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다 홍길동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율도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워 신분의 구애받지 않는 이상국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주인공 세경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시간을 멈추어버린 하이킥은 그동안 현실을 보여주고,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갈 방법들을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극복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세경이 지붕을 뚫고 하이킥을 날리는 것만 보여줄 뿐 하이킥을 날린 이후의 세경은 결코 보여주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고 이상은 없는 것일까요?

그렇게 현실을 무시한 해피엔딩도, 이상을 무시한 새드엔딩도 아닌 방법으로 시간을 멈추어버린 것이지요. 결국 이것이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결말을 만들겠다"는 김병욱 PD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결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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