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kagns의 맘대로 리뷰

선덕여왕, 믿음 이토록 무력한 것이던가

Submitted by skagns on 2009. 12. 25. 06:32

선덕여왕이 결국 비담과 선덕여왕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면서 62회로 종영을 하였습니다. 애초 스토리와는 다소 달라진 듯한 전개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는데요. 그냥 맘 편하게 선덕여왕은 50회로 종영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비담과 선덕여왕의 러브스토리라고 생각을 하니 괜찮더라구요.

사실 저는 비담은 선덕여왕을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덕여왕이 비담을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서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진행되는 갑작스러운 러브스토리에 적잖히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암튼 그것마저도 그 둘이 그냥 사랑한다고 세뇌를 시키고 보니까 이후 진행되는 전개도 어색하지 않고 애절해지는 것이 볼 만하더라구요.

요즘에야 여성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여자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한 나라의 왕으로써 귀족들과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을텐데요. 그러기에 귀족들의 잔머리에 휘둘리지 않고, 백성들을 위하지만 그것을 일일히 알아듣도록 설명해줄 수 없어서 오해를 사기도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독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선덕여왕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상대방을 분석하면서 행동 하나하나에 그 의미를 부여하여 노림수를 찾아내려 하면서 사람의 순수한 마음마저도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죠.

선덕여왕은 자신이 예상치 못한 일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 항상 거리를 두게 되는데요. 그러다보니 이미 자신의 사적인 생각, 마음 따위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공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비담을 좋아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낼 수 없고 아예 무시해버려야 하며, 비담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신과의 스캔들로 비담이 얻게 될 권력의 입김과 세력의 규합 등을 경계하게 됩니다.  

비담이 선덕여왕을 얻기 위해 유일하게 노려볼 수 있는 것은, 여왕으로써 그렇게 독해질 수 밖에 없고 심지어는 자신의 마음 따위는 버려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외로움이었는데요. 그런 깨질 것 같지 않은 유리공 틈새로 보이는 외로움에 끊임없이 대쉬하며 모성애를 유발하는 전략을 펴기도 합니다. 그렇게 찌르고 찌르다 결국 스킨쉽까지 감행하기에 이르는데요. 순간 선덕여왕은 흔들리며 비담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것은 잠깐이었지만 선덕여왕이라는 유리공에 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는데요. 비담은 여기다 맹약서라는 초강수까지 둠으로써 그 틈새로 진입하는데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깨어진 유리공처럼 선덕여왕은 숨기고 숨겨두었던 비담에 대한 감정이 표출되게 되는데요. 비담과의 혼담을 선포하고 이제 대놓고 비담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선덕여왕과 비담 그 둘은 순수한 연모를 했지만, 주위에서 그것을 가만히 두지 않았는데요. 선덕여왕 사람들은 춘추가, 비담의 사람들은 염종이 각자의 자신들의 이를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면서 그 둘을의 연모를 방해하게 됩니다.

연애 초기만 해도 비담이 절대적이고 일편단심의 사랑을 보여주며 대쉬를 하고, 선덕여왕이 자꾸만 팅기면서 비담의 애를 태우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비담이 선덕여왕의 마음과 입에 도장을 찍은 뒤로 선덕여왕은 비담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믿어 버리게 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와중에 비담의 맹약서가 염종에 의해 발견되고, 염종은 그런 비담을 흔들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결국 그런 계락 속에서 그 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함께할 수 없는 궁지로 점점 몰리게 되는데요. 끝내 비담은 선덕여왕이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염종의 계략에 의해 선덕여왕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신국이 되어 선덕여왕을 가지기 위해 비담의 난까지로 치닫게 됩니다.
 
이때까지도 선덕여왕은 비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결국 비담이 난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그것이 염종의 계략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비담이 의심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의미 심장한 말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제가 선덕여왕 멜로편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 사이에 믿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력하단 말인가?"
"사람의 마음에 기대어 산다는 것이 이토록 허무한 것이란 말인가?"



선덕여왕은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게 될 일들을 걱정하며 비담을 견제했지만, 마음을 연 후에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의 무한한 믿음을 보여주었는데요. 그에 반해 비담은 처음에 구애를 할 때 선덕여왕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선덕여왕을 위해서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염종의 계략에 의해 그것이 무너지며 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야 만 것이죠.

그렇게 선덕여왕이 믿음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해답은 비담의 믿음을 무너뜨린 염종에 의해 드러나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모가 이루어졌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아니~ 넌 그래도 난을 일으켰을거야. 왜? 불안하니까."
"폐하가 언제 널 버릴까? 언제 내쳐질까 두려우니까. 믿지 못하니까,"



이처럼 우리는 믿음이라는 이면에 수많은 의심과 두려움, 불안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요. 사랑을 하고 그 사람을 믿지만, "날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닐까? 나를 버리지 않을까? 바람피지 않을까?" 등 수많은 의심 속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게 됩니다.

"과연 절대적인 믿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 제가 선덕여왕 멜로편을 보면서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고민해보면서 도달한 최종 의문점인데요. 상대방이 날 의도적으로 피하고 헤어지자고 하며,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우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에 대하여 무한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런 믿음 역시 상호작용에 기초한 판단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믿음이란 주는 것인지 받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주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고 역시 믿음은 먼저 줄 수 있어야 상대방 역시 그런 자신에게 믿음을 줄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선덕여왕과 비담 사이에 믿음이 깨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염종의 계략이 아닙니다. 염종의 계략은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 결국 선덕여왕이 비담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인 것이죠. 반지를 주면서 서라벌을 떠나 있으라고 할 때 잡은 손을 빼는 선덕여왕의 행동에서 비담은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행여나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들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비담은 염종의 마지막 말처럼 선덕여왕을 믿지 못하였고 그것이 결국 비담의 난을 일으키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이처럼 수많은 믿음을 주었더라도 한가지 잘못으로 인해 그 믿음이 깨지는 것이 마치, 믿음은 들고 있다가 놓치는 순간 떨어져 깨어져 버리는 유리와 같은데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을 하고 서로를 믿음에 있어 항상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꾸준한 노력이을 해야하고 또한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 안 해도 알아주겠지. 나를 잘 알고 있으니 이해하겠지." 하는 것은 상대방이 독심술을 터득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죠. 상대방에게 "왜 날 못 믿냐" 고 다그치고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못 믿는 그 이유를 찾아내어서, 상대방에게 믿음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좀 더 단단한 믿음이라는 유리를 만드는 기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구독+하는 센스도 잊지마시구요!

Tags :

, 댓글 목록 열기 or 닫기